현대 튀니지 해안에 위치한 고대 도시 국가 카르타고는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강력한 세력 중 하나였습니다. 로마와의 전쟁으로 인해 멸망하였지만 그들의 번영, 혁신, 갈등으로 얼룩진 카르타고의 역사는 기원전 9세기 건국부터 기원전 146년 멸망까지 수세기에 걸쳐 이어졌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카르타고의 역사에 대해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고대 카르타고의 건국
기원전 814년에 건국된 카르타고는 현대 레바논 지역의 항해 민족인 페니키아인들에게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페니키아의 정치적 혼란을 피해 북아프리카 해안에 도시를 세웠던 디도여왕이 건국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카르타고라는 이름은 페니키아어 "Qart-ḥadašt"에서 파생되었으며 "새로운 도시"를 의미합니다. 현재 튀니스 만에 있는 이 도시의 전략적 위치는 해상 무역로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이는 카르타고가 주요 무역 허브로 성장하는 것을 촉진했습니다. 카르타고인은 페니키아인 조상과 마찬가지로 해양 무역에 뛰어났으며 스페인, 시칠리아, 사르디니아 및 그 너머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여 지중해 전역에 식민지 네트워크와 무역 파트너십을 구축했습니다.
2. 고대 카르타고의 경제적, 문화적 번영
카르타고의 번영은 광범위한 무역 네트워크, 농업, 혁신 산업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도시 국가는 염색한 직물, 금속 세공품, 유리 제품 등 고급 제품 생산으로 유명했습니다. 또 농업, 특히 밀, 올리브, 포도 재배가 발전하여 많은 인구를 부양했습니다. 문화적으로 카르타고는 페니키아, 아프리카, 헬레니즘 전통이 혼합된 문화였습니다. 카르타고인들은 다신교였으며 바알 함몬과 타니트와 같은 신을 숭배했으며, 거대한 사원과 종교 축제가 사회에서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중앙 항구, 주거 지역,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특징으로 하는 도시의 배치는 도시의 위상과 세련미를 반영했습니다.
3. 고대 카르타고의 군사적 갈등
카르타고의 확장은 다른 세력, 특히 그리스 도시 국가와 나중에는 급성장하는 로마 공화국과의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갈등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원전 264년부터 기원전 146년까지 카르타고와 로마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세 번의 전쟁인 포에니 전쟁이었습니다.
제1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241년)
제1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241년)은 지중해의 패권을 얻고자 하는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이권 분쟁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로마는 카르타고 식민지로 있는 시칠리아를 점령하여 해상으로 진출하려 했고, 이는 결국 시칠리아를 둘러싸고 카르타고와 전쟁을 발생시켰습니다. 23년 간의 전쟁 끝에 로마는 한니발의 아버지이기도 한 하밀카르 바르카가 이끄는 카르타고 해군을 격멸시키고 승리를 거두었다.
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201년)
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201년)은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로 유명한 전쟁입니다.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해 온 것으로 유명하며 기원전 218년 에스파냐 사군툼을 공격함으로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한니발은 군사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입하였으며 기원전 216년의 칸나이 전투를 비롯한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 로마군을 패배시켜 로마에서는 멸망 위기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지연전술로 만회할 시간을 벌었으며 로마가 전투를 피하자 한니발은 이탈리아 정복하지 못하고 시간을 끌게 됩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외 지역에서도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 전투에서는 로마군이 카르타고 군에 모두 승리하여 수도 카르타고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에 한니발은 이탈리아에서 철수하기로 하고 카르타고 근처에서 벌어진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 한니발의 카르타고가 결정적으로 패함으로써 16년 동안의 이 전쟁은 종결되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카르타고는 막대한 배상금을 로마에 물어주었으며 이에 지중해 재해권과 이권을 로마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제3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149~146년)
제3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149~146년)은 카르타고가 누미디아를 침법 하게 되어 발생된 전쟁으로 카르타고에 대한 포위 공격으로 끝나고 되었습니다. 3년의 포위를 버텨왔지만 도시는 함락되었고 로마군은 도시를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살아남은 주민들을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카르타고는 멸망하고 지중해에서 로마의 지배가 시작된 것을 의미합니다.
4. 카르타고의 유산
카르타고 도시의 완전한 파괴에도 불구하고 카르타고의 유산은 지속되었습니다. 무역, 농업, 공학 분야에서 유산은 후속 문명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카르타고 이야기, 특히 한니발과 로마 사이의 서사적 투쟁은 수세기 동안 역사가와 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고고학적 발견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카르타고 유적지에서는 한때 위대했던 이 도시의 웅장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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